19세기는 러시아 음악의 대가들이 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민중들을 음악의 중심으로 가져온 러시아 5인조와 차이코프스키도 이 무렵 활동하게 됩니다. 오늘은 19세기 러시아 음악의 시대적 배경과 대표 작곡가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19세기 러시아 음악의 변화
러시아의 클래식 음악가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는 19세기입니다. 이 시기의 러시아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운이 풍미하게 되었고, 이 가운데 음악가들 역시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음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음악적 창작과정에 영향을 주어 대가와 대작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중 글린카는 19세기 전반기에 러시아음악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민족적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음악언어를 만들어내면서 러시아 음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 뒤를 이어 다르고 미슈스키가 나와 푸시킨의 시에 곡을 붙이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주제를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대작곡가들이 나아갈 길을 만들어나갔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귀족 가문에서는 클래식 음악교육이 자녀들 교육에 필수가 되면서 러시아 음악이 발전하는데 기여를 했습니다. 또한 1859년에는 러시아 음악협회가 만들어지고, 1862년에는 러시아 최초의 직업 음악가 양성기관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이 개설됐으며, 1866년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을 창립되며 19세기 러시아음악 발전의 기틀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2. 러시아 5인조와 차이코프스키
러시아 민중 속에서 음악의 출발점을 찾았던 대표적인 음악가 5인을 '러시아 5인조'라고 일컫었습니다. 1850년대 말, 전문 음악가였던 발라키레프의 주도하에 5명의 멤버가 구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발라키레프가 음악지도를 맡았고, 큐이는 선전가 · 비평가로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널리 알렸으며, 관리였던 무소륵스키, 해군장교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 화학자였던 보로딘의 세 아마추어가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들 '러시아 5인조'는 서유럽의 낭만파 작곡가들(베토벤, 슈만, 리스트, 베를리오즈 등)을 존경하며, 자신들의 음악에 민족성과 민중성을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러시아의 민중생활, 역사, 민요와 민화 등과 같은 소재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발라키레프와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많은 러시아 민요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러시아 민요의 전통양식을 예술음악에 도입하는 기법을 널리 쓰였습니다. '러시아 5인조'는 여러 음악 장르 중에서도 오페라와 가곡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음악 속에서 그들의 뜻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서사시 〈이고리 공 원정기〉를 오페라화한 보로딘의 〈이고리 공〉, 러시아 민화와 서사시를 소재로 한 림스키의 〈눈아가씨〉 〈사트코〉 등의 오페라는 지금까지도 세계 각지의 극장에서 즐겨 무대에 오르는 대표작입니다. 이들 작품에서는 민중이 등장하는 장면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독특한 극작법이 나타납니다. 또한 풍속 묘사가 돋보이는 관현악 작품 중에서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보로딘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림스키의 〈스페인 카프리치오〉 〈셰헤라자데〉 등이 대표곡으로 꼽힙니다. 러시아 음악을 대표하는 차이콥스키는 5인조와 같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직업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862년 페테르부르크에 음악원이 개설되자 이곳에서 수업을 듣고, 1866년 졸업과 동시에 새로 개설된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초빙되었습니다. 초기의 차이콥스키는 5인조의 발라키레프, 림스키 등과도 친하게 지내면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 역시 조국 러시아와 민중들에 대한 마음이 깊었고 5인조와 같이 여러 방면에서 공감대를 넓혀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작방법과 음악적 경향, 서유럽 예술가들에 대한 태도면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3. 차이코스프키의 대표작
차이콥스키의 초기 작품 중에서는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 제1악장의 웅장한 도입부로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이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그러나 1870년대 중반부터 차이콥스키는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게 됩니다. 불행한 결혼으로 낙담하게 되었고, 부유한 미망인 폰 메크 부인과의 숙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입니다. 절망한 그는 고통 속에 목숨을 버리려는 시도를 하는 등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그의 안식처였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고통을 승화시켜 불멸의 대작들을 만들어낸다. 중기 이후에 그는 러시아의 발레음악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세 편의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을 만들어 냅니다. 또한 푸시킨의 작품을 소재로 하여 만든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스페이드의 여왕〉, 러시아 풍의 선율이 심금을 울리는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극명하게 표현한 〈교향곡 제6번(비창)〉 등을 작곡하게 됩니다. 러시아 혁명운동이 고조되던 1860~1870년대와 그 후 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차이콥스키는 시대만큼이나 절망과 환희 속에서 크게 동요하면서, 아름다운 선율로 작품을 만들어 냈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인간의 운명을 생각하고 그 슬픔과 고뇌에 공감하며 인간의 행복을 꿈꾸는 것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